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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투어_국내여행/영한산악회

(2007.11.9, 금 ~ 10, 토)무박 2일, 지리산 천왕봉 등정기 (2007.12.28 작성)

지리산.

바다 건너 있는 한라산을 제외하면, 남쪽 반도 땅덩어리에서 가장 높다는 산.

이 웅장한 산을 한번 가 봐야지 하다가도 1,915m 라는 높이에 압도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때문인지 올 기회를 쉽사리 만들지 못해왔었다.

 

일단 기본 2박 3일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직장인으로서 그런 시간이 어디 있겠거니 하며 포기해 버렸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얼마 전, 인터넷 웹서핑을 하다가 지리산 천왕봉을 무박으로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주말을 이용해서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면 속의 알수 없는 역마살이 발동하여 드디어 지리산으로 출발!

 

11월 9일 금요일, 동서울터미널에서 지리산 백무동으로 가는 심야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원래 심야버스는 밤 12시에 출발하는 노선 1개가 있으나

금요일이고 지리산 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임시버스가 2대가 더 편성되어 있었다.

23:55, 23:58, 24:00 출발. 총 3대의 지리산행 버스가 탑승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 중 23:58 출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임시편성 2대까지 거의 꽉 찬 상태로 버스는 출발했다.

 

 (동서울발 백무동행 함양지리산고속 버스 전경)

 

버스는 함양, 인월을 거쳐 백무동에 3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걸린 시간과 도착한 시간(3시 30분)이 같네. ㅋ

버스에서 내리니 등산객 여럿이 야간산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후레쉬 배터리를 점검하고 드디어 지리산행 첫발을 내딛기 시작.

버스 하차지점에서 10여분 정도 올라가니 백무동 탐방안내소가 나오고, 얼마 후에 두 갈래길이 나왔다.

왼쪽은 하동바위를 거쳐 장터목대피소로 올라가는, 천왕봉 최단거리 코스이고

오른쪽은 가내소폭포를 거쳐 세석대피소로 올라가는 길이다.

세석을 거쳐 장터목, 천왕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하동바위를 거쳐서 가는것 보다 다소 도는 코스지만

지리산 종주 코스의 백미라고 하는 세석평전~장터목 코스를 밟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여

다소 돌아가지만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을 택했다.

제법 되는 야간등산객들은 거의 대부분 하동바위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세석대피소로 가는 어두운 길은 내 후레쉬만이 불을 밝힌 채 외로운 안내를 하고 있었다.

 

(해발 540m 백무동야영장 갈림길. 하동바위로 가면 천왕봉에 더 빨리 오를 수 있다.)

 

외로운 발걸음은 4시간여 계속 되었다.

간혹 뒤에서 불빛이 보이긴 했지만, 그들은 전문 산악인인 듯했고, 나를 추월하여 앞질러갔다.

내 페이스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니.....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가내소 폭포를 지나자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날 밝을 때 보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내소 폭포와 함께 한신계곡을 가로지르는 크로 작은 다리들을 건너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 나갔다.

 

간간히 나오는, 거리가 점점 가까워옴을 알리는 안내판에 무척 반가워하며.

좁은 길로 인해 길을 몇 번이고 잃어버리다 다시 제 길을 찾아서 올라가기를 반복하며.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면 잠시 쉬고 땀을 닦으며.

어느덧 먼동이 터 온다.

 

세석대피소 0.7km 표지판이 나오고

마지막 힘든 코스가 다가온다.

경사가 장난이 아니군...

조금씩, 서서히 오르니 능선과 만나며 해발 1,557m 세석갈림길이 나왔다.

 

(세석갈림길. 해발 1,557m의 높은 고지에 있으며 장터목, 벽소령, 백무동, 거림으로 이어지는 교차로) 

 

세석갈림길 아래에 바로 세석대피소가 있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경. 4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세석 대피소 주변은 "세석평전"이라고 불리는데, 정상부가 평평한 지형으로 굉장히 넓었다.

세석대피소에서 미리 싸온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여기서는 먹을거리를 시중가보다 다소 비싸게 판매하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모양이다.

초코파이 400원, 캔음료 1,000원, 통조림 3,000원 정도?

 

암튼, 세석대피소 주변 정경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이제 다시 등산화 끈을 고쳐 매고 다시 올라가야지.

 

 (세석대피소 전경, 넓디 넓은 세석평전 한가운데에 있다.)

 

 (세석대피소 내에서 바라본 햇살. 눈부시다)

 

 (빛바랜 우체통을 비추는 세석의 햇살)

 

 (세석대피소 입구에서 한 컷)

 

 (세석평전 전경)

 

 (세석대피소에서 바라본 장터목 올라가는 길)

 

이제 장터목 대피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발 1,709m 촛대봉 정상을 지나게 된다.

촛대봉 정상에서 세석대피소를 내려보니 손바닥만하다. 

  

(촛대봉 정상 근처에서 바라본 세석평전과 세석대피소) 

 

 (촛대봉에서 바라본,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촛대봉과 연하평전을 지나

세석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처음 출발할 때 하동바위 쪽을 선택했으면 훨씬 일찍 도착했을 이곳.

지리산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 때문에 이곳을 예약하기는 상당히 힘들다고 들었다.

장터목에서 잠깐 쉬면서 초코파이를 400원에 구입한 다음 에너지를 다시 충전..

  

 (장터목대피소 전경, 해발 1,653m)

 (장터목에 있는 "하늘 아래 첫 우체통". 실제로 우편물 수거가 이루어진다고.)

 

 (장터목 이정표. 백무동과 중산리로 내려갈 수 있으며 직진하면 천왕봉이다.)

 

장터목을 나와 다시 오르막으로 전진.

다소 가파른 등산로를 짧게 오르니 이윽고 해발 1,808m의 제석봉이 나온다.

지금껏 내가 올라가 본 가장 높은 곳이다. 곧있으면 천왕봉이 그 기록을 경신할 테지. 

 

(제석봉 정상 이정표. 해발고도가 점점 높아지며 정상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이제 코앞이다.)

 

제석봉을 지나니 천왕봉 턱밑까지 왔다.

통천문을 지나니 정상답게 바람이 세다.

그래도 멀게만 보였던 정상이 조금씩 앞으로 다가오니 기분 또한 감개무량하다.

조금씩...앞으로 나아가니 드디어 천왕봉에 발을 딛었다.

오전 11시 30분. 정상까지 8시간 가까이 소요된 셈.

 

(천왕봉 정상에서 한 컷.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로 북새통이었다.)

 

(천왕봉 정상에서 바라본 산하. 까마득한 아래에 펼쳐진다.)

 

(천왕봉 정상 이정표. 내가 내려가야 할 중산리가 표시되어 있다.)

 

이제 하산길.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은 굉장히 가파르다.

가파른 만큼 천왕봉으로 가기에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래서 그런지 천왕봉으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가 올라왔던 길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1시간 반 정도 내려오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이라는 법계사와

로타리대피소가 나왔다.

예전 지리산 빨치산들의 아지트가 있었던 곳이라고.

 

(로타리대피소 전경)

 

 

 (로타리대피소 이정표. 천왕봉 2.0km을 가리키고 있지만, 엄청난 경사도를 보여주는 길이다.)

 

다시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다소 지루한 내리막이 계속되다가 드디어 중산리 입구에 도착.

도착시간은 14시 30분 정도.

산이 큰 만큼 내리막도 굉장히 길었다.

 

 (다 내려온 지리산. 중산리 안내소 앞)

 

중산리에서 다시 버스를 타려면 20분정도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야한다.

이번 코스 중 가장 지루한 구간이 될 듯.

 

한 시간에 한대씩 있는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중산리 종점에 대기중인 영화여객 진주행 버스)

 

너무나 피곤했지만, 그만큼 재밌었던 등산이었다.

지리산은 웅장함 그 자체였다.

지리산 종주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꿈틀댔고,

시간이 나면 다시 오고 싶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가득 들었다.

이정도 코스라면 무박으로 가도 무리 없을 듯 싶었고...

 

지금 글을 쓰는 시간은 2007년 12월 28일.

한달 반이 지났다.

게으름으로 인하여 이제서야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음.ㅋ

 

그 사이 똑같은 코스로 친구들과 한 번 더 다녀왔다.

몇번이고 가도 싫증나지 않는 곳. 그곳은 지리산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