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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투어_국내여행/영한산악회

(2008.12.28) 경주 남산 트레킹

작년 연말에 경주 남산에 처음으로 올랐다.
요 아래 글에서도 썼다시피 경주는 제법 많이 가본 도시 중 하나지만, 안 가본 곳 또한 많았던 것도 사실.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좀처럼 없었던 경주 남산!

경주 남산은 금오산과 금오산 남쪽에 있는 고위산을 합쳐서 통상 이야기하며
유네스코에도 등록된, 세계적으로도 소중한 자연 박물관이다.
수많은 신라시대 불상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으며, 등산로 또한 잘 개발되어 있어서 트레킹으로도 그만인 곳이다.

남산의 입구는 경주 남쪽의 삼릉, 포석정, 용장골, 통일전 등 여러 곳에 있지만
가장 불상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삼릉 쪽에서 올라 통일전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산행 들머리 경주 삼릉.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릉으로 전해진다. 신라 56명의 왕들 중에 박씨 왕은 총 10명인데, 그 중 3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는 셈이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뒤에 능이 하나 더 있다)

삼릉은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남면 방향으로 가는 500번대 시내버스를 타고 20분여를 가면 된다. 버스는 박혁거세 릉으로 알려진 오릉, 박혁거세가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나정, 유명한 연회장터였던 포석정을 지나 삼릉 입구에 나를 내려다주었다.

삼릉은 소나무 숲 속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 풍광과 잘 어울리는 위치에 있다. 전형적인 둥근 봉분이다.

(삼릉 뒤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등산로는 처음에는 나무로 길을 만들어 아주 넓찍하게 되어 있어 편하다. 조금만 올라가면 전형적인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등산로가 나오지만..
(남산은 이정표가 1m 단위까지 표시되어 있다.)


삼릉을 출발하여 처음으로 나온 불상은 목 없는 석가좌상이었다. 목이 없어서 다소 섬뜩한 기분이 든다.
문화해설서를 보니 조선시대 때 불교탄압이 이루어지던 시기, 유생들에 의해서 목이 절단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크고 작은 불상이 스쳐 지나간다. 조그만 부처석상도 있고, 돌에 부조로 조각한 불화도 있고...사진으로는 담기 힘들지만, 실제로 보면 엄청 크다.

(상선암 위에 있는, 가장 컸던 마애석가좌상)

(마애석가좌상 원경)

(멀리 보이는 경주 서부권 전경)

(금오산 정상)

흔히 남산이라 부르는 금오산 정상에 도착하니 삼릉에서 출발한지 한시간 남짓 지났다. 산세가 그리 크지 않아 금방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정상 느낌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좌우측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장쾌하게 펼쳐지는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하산길은 통일전 방향으로 잡았다. 그러니까 금오산 서쪽에서 올라와서 동쪽으로 내려가는 셈.
남산은 임도가 깔려 있어서 차량들도 쉽게 정상까지 올라올 수 있다. 물론, 평소에 아무 차량이나 개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일전 방향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하산할 수 있다. 등산의 느낌은 떨어지긴 해도...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삼화령 부근에서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용장사터로 가는 갈림길이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했다는 그곳. 그곳에는 경주 남산 사진하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장사터 3층석탑이 있는데, 잠깐 돌아가더라도 그곳을 꼭 가 보고 싶었기에 옆길로 샜다.

5분 남짓 산비탈을 따라 내려가니 용장사터 3층석탑의 웅장한 자태가 나를 맞는다.


금오산을 뒤로 하고, 앞에 보이는 고위산을 품에 안으며 절벽을 기단으로 삼아 용장사터 3층 석탑은 당당하게 아래를 굽어 보고 있었다. 폐사지의 탑이라서 그런지 더욱 분위기도 사는 듯.

다시 삼화령으로 돌아와 통일전으로 내려왔다.
통일전 입구 근처에는 남산 3층석탑이 있기에, 기념으로 사진 속에 담아보았다.

(경주 남산동 쌍탑, 똑같은 탑이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좌측에 또 있다)

(통일전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멀리 보이는 남산을 찍어보았다)

경주 남산. 아직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처음 가보니 과연 굉장한 박물관이었다.
다음번에는 안가본 고위산을 중심으로 용장골로 해서 샅샅이 다녀보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