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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투어_국내여행/강원도

(2009.2.19) 과거와 현재의 괴리, 상동읍과 사북읍을 찾아서

나라꼴이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향수에 젖어들고픈 감상이 문득 든다.

우리나라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 과거의 영화로웠던 모습을 어렴풋이 간직한 채 쓸쓸히 남아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예전에 가봤던 제련소가 있던 충남 장항도 그랬고, 태백의 철암 거리도 그랬고...

이번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본 곳은,
70년대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중추 역할이었던 중석(텅스텐) 채굴 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하지만, 이제는 폐광으로 인해 인구 3만 명의 산골 속의 번화읍이 인구 1,200명으로 풍선 바람빠지듯 줄어들어버린,
강원도 영월의 동남쪽 끝 산골마을 상동읍이다.

내 고향 봉화에도 장군광업소와 금정광업소 등 과거의 영화를 간직한 폐광이 이곳 저곳 있는데,
봉화의 북쪽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상동읍. 역시, 과거의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쓸쓸한 풍경만이 나를 맞았다.

상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영월까지 가야 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을 벗어났다.
과거에는 산골 굽이굽이 돌아 들어간 강원도 땅이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영월까지 단 2시간만에 도착했으니.
산골 굽이굽이 가는 길도 나름대로 운치있지만, 이젠 시간 단축과 함께 그런 운치도 사라져가는 추세이다.
뭐, 영월에서 상동 가는 길은 그러한 예전의 운치가 아직도 그대로지만...

상동으로 가는 버스 시간이 남아 영월 읍내를 구경했다. 청록다방이라고 라디오스타 촬영장소로 유명한 다방이 읍내에 있다. 이거 신문기사로도 본 것 같은데....한번 들어가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왔다.

점심시간 무렵의 영월터미널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영월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 걸려 도착한 상동. 상동버스터미널은 영월터미널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썰렁함 그 자체. 과연 이곳까지 버스가 들어오기는 하는걸까 싶기도 하는 쓸쓸한 광경.
예전에 광산 노동자들로 북적일 때는 그래도 시끌벅적 했겠지만.

상동에서는 영월 방향과 태백 방향 시외버스가 다닌다.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도 있지만 시골 마을마을마다 거쳐 가는 버스라 서울까지 오래 걸린다.
영월군이 넓긴 넓은 모양....같은 영월군인 상동에서 주천까지 이동하는데 차비가 9,000원이다.

터미널 옆의 시계포와 여관. 영업을 안 한지 오래된 듯. 시계포 안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있긴 했지만, 영업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탄광촌의 전형적인 취락형태를 보여주는 이곳. 길 따라 양쪽으로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식육점(정육점)이라는 간판 표시...서울에서는 보기 힘든데...봉화나 안동 이쪽에서는 식육점이라는 이름이 정육점 대신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동읍내 거리에서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가끔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노인들 뿐...

세탁소도 흔적만 남았고...

폐허가 된 판자집. 상동읍내를 흐르는 소하천을 따라 이처럼 집들도 많았던 모양....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지만..

버스정류장에서 꼴두바위 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있는 구래초등학교 전경.
인적이 드문 이곳에....이정도 규모의 학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사진상으로는 조금 짤렸지만 우측에도 2층짜리 건물이 있다.
옛날에는 학생들도 많았겠지. 학생이 없다고 있는 건물을 줄일 수도 없을 테니.

폐가가 한둘이 아니다. 이곳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걸까.

구래초등학교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꼴두바위가 나온다. 옛날 자식이 없다고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던 한 며느리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바위.

옛날 꼴두바위(고두암) 밑에 일찍 남편을 여의고 청상과부가 된 여인이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주막을 내어 장사를 하였는데, 주막 앞길이 삼척등지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이어서 장사가 잘돼 몇 년 안가서 큰 부자가 되었다.
돈을 많이 모아 남부럽지 않게 된 이 여인은 소원이 있다면 남들처럼 아들을 얻는 일이었다. 또한 주막집일도 오래 하다보니 손님이 많이 모여 즐거운 비명을 올리다 못해 지쳐버릴 지경이었으나 시어머니의 은근한 감시가 있고 함부로 처신도 할 수 없어 남모르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날이 저물 무렵에 중이 찾아 들었다. 여인은 시어머니 몰래 그중을 극진히 대접하고 소원이 자식을 하나 두고 싶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신세를 한탄하며 방법을 상의하게 되었다. 중이 말하기를 “아무도 모르게 고두암의 바위머리를 깨어내 보라”고 일러 주었다.  슬기로운 중이 여자의 힘으로 고두암의 머릿돌을 깨라고 함은 이일에 정신을 모아 성정(性情)에 대한 고민을 잊게 하려고 함이었으리라.
이튿날 일찍부터 여인은 중의 말대로 아무도 모르게 고두암의 머릿돌 깨는 데만 열중하였으니 얼마 후 그 머릿돌은 깨어져 없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 이 주막에는 손님이 끊기고 한가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얼마 후 며느리의 소행을 알게 된 시어머니는 괘씸하게 여기고 며느리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끼니마져 제대로 주지 않아 이 여인은 아들을 낳아 보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를 가엾게 여긴 신(神)은 그 여인 대신 고두암으로 하여금 잉태하게 하였으니 곧 그토록 애타게 소원하던 아들을 중석 생산으로써 대신하여 생남(生男)의 소원을 이루게 하였다고 전한다.

어떻게 보면 슬픈 전설이긴 한데....70년대에 활황했던 중석산업과 관련하여 다소 끼워맞춘 것 같기도 하다.

외지 사람이 와서 그런가....고양이에게 셔터를 갖다 대니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다.

꼴두바위 앞은 대한중석 광산과 가까워서 그런지 여러 점포들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형형색색의 건물들....지금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예전의 다채로웠던 영화를 잠시나마 느끼라고 하는 듯.

물론, 형형색색의 건물 이면은 다 이렇게 똑같다.

선술집으로 보이는 "묵호집"
동해안 묵호에서 오는 해산물들을 취급했던 모양이다.
옛날,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퇴근한 광부들이 묵호집에 와서 한잔 두잔 넘기며 삶의 힘겨움들을 푸는 광경이 오버랩된다.

묵호집 옆에 있는 또다른 식당과 당구장.
전화번호가 세자리다. 엄청 옛날 이야기.
하긴, 당구도 남자들의 여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서도..

광산 노동자들의 사택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빌라촌. 역시 아무도 없다. 여느 도시의 빌라촌과 비슷한 구조이지만....사람이 없다는 것이 다르군.

꼴두바위에서 왼편 뒤로 조금만 들어가면 폐허가 된 대한중석 광산이 나온다.
건물 형체만 남아 있고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과거의 영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곳.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땀을 흘렸겠지.

엄청난 규모를 보이는 대한중석 폐광터. 3만 명이 살았다는 상동읍의 과거 이야기도 거짓말이 아닌 것으로 믿게 되는 증거들.

태백으로 넘어가는 시외버스 시간이 되어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태백산 줄기를 비껴 넘어 태백에 도착, 다시 사북으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사북.
옛날 "젊은이의 양지" 라는 KBS 드라마를 기억한다면, 배경으로 나왔던 탄광촌이다.
여기도 상동처럼 폐광으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광경으로 변했겠다 싶어
일부러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들렀다.

하지만, 이곳은 상동과는 달랐다.
비교적 번화한 거리, 사람들도 많고...
아무래도 이웃의 강원랜드 카지노와 하이원스키장으로 인한 경제 효과를 누리는 듯 했다.
상동읍은 그럴 개발의 여지도 없는 것 같은데.....어찌 보면 좋은 사례일지도..

상동읍과 천양지차인 사북읍 시내.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다. 상동읍에는 흔한 수퍼마켓도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사실, 상동읍과 마찬가지 컨셉으로 사북의 퇴락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러 찾아간 것이었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써 두었듯이, 사북읍은 퇴락한 모습으로 인해 감히 관광버스를 타고 지나가기 미안했다고 했었는데....하긴, 그건 15년 전 이야기이니까.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사북역 플랫폼에서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다가 본 모습이다.
과거에 이곳이 탄광이었다는 증거를 역 한귀퉁이에 재현해 놓았는데....그 뒤로 보이는 모텔 건물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람이 과거의 향수를 간직하고 사는 것. 아름다운 추억들.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내 고향 봉화땅의 퇴락한 모습들도 여기저기 많은데..

발 닿는 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예전의 추억에 젖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