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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투어_국내여행/전라도

(2009.5.14) 남해의 고도, 거문도를 가다

모처럼 주중에 쉬는 날을 얻어 가고 싶었던 남해의 고도, 거문도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거문도는 육지에서도 굉장히 멀리 떨어진 섬이기 때문에, 이전까지의 여행과 비교해 보았을 때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득 안고, 이것 저것 정보들을 검색해 본 다음 거문도로 가는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거문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하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여수지만 육지에서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에서 가는 것이 더 가깝다.
암튼, 거문도에 가기 위해서는 여수항과 녹동항 중 한 곳에서 출발하면 된다. 그래서 여수항에서 거문도에 들어갔다가 녹동항으로 나오는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간단한 옷차림으로 갈아 입고 느즈막한 시간에 집을 나서 영등포역으로 갔다.
용산역을 22시 50분에 출발, 영등포역 정차 후 22시 58분에 출발하는 여수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여수까지는 5시간 반 정도 걸린다. 여수역에 도착할 즈음에 시내버스 첫차가 운행하며 여수 향일암 일출을 보는데 편리한 일정을 짤 수 있다. 예전에도 이 기차를 타고 여수에 와서 향일암 일출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 작성했던 여수 향일암 여행기 바로가기 click!])

새벽 4시 반경, 여수역에 도착하니 적막했다. 평일이니 관광 오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물론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평일에 온 것이기 하지만...
바닷바람의 영향인가..좀 춥긴 했지만 제법 빨라진 일출로 인해 금방 주위는 환해졌고, 시간도 금방 갔다. 여차저차 시간을 보내고 여수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여수항 여객터미널에서 7시 40분에 출발하는 거문도행 쾌속선에 탑승했다.

(07시 40분 여수발 손죽도 경유 거문도행 쾌속선 오가고호. 거문도까지는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운임은 36,600원)

배삯이 자그마치 36,600원이다. 서울-부산 우등고속버스 운임보다 비싸다. 섬에 들어가는 것 자체로도 큰 결심을 하게 만드는 벽인 듯..
쾌청한 날씨 속에 오가고호는 빠른 속도로 남해 다도해 속을 질주한다. 갑판에서 바람을 쐬다 밤새어 달려 온 여파로 인해 잠시 객실에서 눈을 붙이니 어느덧 손죽도라는 섬에 도착했다. 거문도행만 아니었다면 손죽도라는 섬에 언제 들러볼까. 내리지는 못했지만 멀리서만 보아도 굉장히 평화로와보이는 섬이었다.

(멀리서 본 손죽도. 여수항에서 1시간 반 정도 달려 잠시 경유한 작은 섬.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오전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드디어 거문도에 도착했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도와 서도라는 비교적 큰 섬 사이에 작은 고도가 위치한다. 고도에 여객터미널과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농협 등의 주요 기관이 모여 있으며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왕래가 가능하다. 동도에 가기 위해서는 별도의 배를 타야 되기 때문에 서도, 고도를 중심으로 다닐 수 밖에 없어 다소 아쉽기도. 거문항은 서도,동도,고도로 둘러싸인 작은 내해(內海)에 위치한 천혜의 항구로 딱 봐도 아담한 사이즈의,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드디어 거문도에 도착. 육지에서 제법 떨어진 섬이지만 건물도 생각보다 많고 규모도 컸다.)

거문항을 나와 삼호교를 건너 서도로 들어왔다. 오늘 일정의 가장 큰 부분인 거문도등대 및 서도 보로봉 트래킹을 위해서 서둘러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문해수욕장(유림해수욕장)을 지난다. 바다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굉장히 맑은 바다였다. 이정도 맑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던 듯..

(유림해수욕장을 지나며...물이 엄청 맑다. 저 멀리 보이는 백사장.)

거문도등대로 이동하면서 나즈막한 언덕을 지나는데 저 멀리 서도와 고도를 연결해주는 삼호교와 거문항이 한 눈에 펼쳐진다.

(삼호교와 거문항 전경. 멀리 내가 타고 온 오가고호가 다시 여수항으로 돌아가고 있다. 삼호교를 중심으로 왼편이 서도, 오른편이 고도)

거문도등대로 올라가는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숲 터널이다. 유난히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도 동백숲 터널 안에서는 저 멀리 있는 어렴풋한 빛일 뿐.

(수십 미터 동안 이렇게 울창한 동백숲 터널이 이어진다.)

드디어 거문도 등대에 도착했다. 1905년부터 불을 밝혀 남해안에서는 가장 오래된 등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앞바다 팔미도 등대에 이은 두번째로 오래된 등대라고.  지금은 몇 년 전에 새로 지은 등대에서 그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100년이 넘은 예전 등대는 새 등대에 임무를 물려주고 그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거문도 등대에서는 저 멀리 백도까지 뚜렷히 조망되는 등 가슴 뻥 뚫리는 광경으로 속까지 시원해지는 듯 했다. 날씨가 굉장히 좋은 날이라면 제주도까지 보인다던데...

(좌측의 새 등대와 우측의 오래된 등대. 새 등대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올라가면 전후좌우로 뻥 뚫리는 쾌적한 조망이 가능하다)

거문도등대를 나와 서도 보로봉 트래킹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문도 등대 서쪽 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선바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거문도등대에서 바라본 선바위. 하늘을 향해 서있다고 선바위라고 하는데, 노인이 앉아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노인암이라고도 한다.)

거문도 등대는 서도와 "목넘어"라는 좁은 목을 사이로 연결되어 있다. 태풍 등으로 인해 파도가 높게 치면 바닷물이 넘어온다고 "목넘어"라고 한단다. 마치 소매물도에 갔을 때 등대섬 가는 길이랑 비슷한 광경이다. 아까도 목넘어를 넘어 거문도등대로 들어왔고, 다시 목넘어를 넘어 보로봉으로 이동했다.

(서도와 거문도등대를 연결해 주는 좁은 목인 "목넘어" 전경. 우측으로 삼호교와 거문항이 멀리 보인다. 목넘어 왼편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보로봉)

목넘어를 지나니 보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갈라진다. 해발고도 200미터가 채 안 되는 봉우리이기 때문에 금방 올라갈 수 있다. 365계단이라는 계단을 오르면 금새 보로봉-불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진입하게 되고, 좌우측으로 다도해가 멀리 조망된다.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코스.

(목넘어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이정표. 여기서 신선바위 방향으로 위로 올라간다.)

(365계단을 오르면 금새 능선으로 들어오며 장쾌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진짜로 365개 계단인지 세면서 올라갔는데, 실제로는 390여개 정도 되었던 듯....금방 올라갈 수 있다.)

365계단을 지나니 아까 보았던 선바위와 등대가 멀리 보인다.

(보로봉 능선에서 바라본 등대와 선바위)

얼마 지나지 않아 보로봉에 도착했다. 보로봉 정상에서는 거문도 3도(서도,고도,동도)가 한 눈에 펼쳐졌다.

(보로봉에서 바라본 거문도 정경. 유림해수욕장의 맑은 바다는 여기서 봐도 실감이 났다. 삼호교와 거문항. 그 뒤로 보이는 동도. 이처럼 서도,동도,고도로 둘러싸인 거문항은 천혜의 항구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보로봉 아래 신선바위에서 거문항을 배경으로)

(신선바위 주변에서는 이름모를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많았다)

불탄봉까지 갔다가 서도를 완전히 가로지르는 트래킹을 하고 싶었지만, 배시간도 있고 해서 보로봉-신선바위까지만 갔다가 해수욕장 방향으로 내려왔다.
고도로 복귀하는 도중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거문도 택시가 지나간다. 운임은 육지보다 다소 비쌀 듯.

(거문도에서만 볼 수 있는 스타렉스 택시)

다시 삼호교를 건너 거문항으로 들어와 면사무소 뒤편에 있는 영국군 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19세기 말,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서구 열강들의 이권 다툼이 극심할 때, 거문항의 전략적인 가치를 본 영국군이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령한 적이 있었다. 2년여 간의 주둔 이후 영국군은 철수했는데, 그 중 거문도에서 사망한 영국군 수병들의 묘소가 이곳에 있다.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어찌 보면 가슴아픈 역사의 일면이다.
영국군묘는 거문항에서 거문초등학교를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나온다.

(영국군묘 정경. 영국군묘를 등지고 서면 저 멀리 바다가 펼쳐진다.)

영국군묘를 나와 다시 항구로 돌아간다. 도중에 거문초등학교를 지나는데 꾕과리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학생들이 방과 후에 계속 남아 무언가를 연습하는 듯.

어느덧 시간이 다 되었다. 거문도에서 육지로 나가려면 여수로 되돌아가는 방법과 고흥 녹동항으로 가는 방법이 있는데, 아까와 다른 경로를 선택하기로 했다. 녹동항으로 가는 16시발 쾌속선, 가고오고호에 몸을 실었다. 1시간 10분만에 녹동항까지 이동하니 여수보다는 훨씬 가까운 셈. 운임은 24,000원이다. 여수에서 거문도로 들어와 녹동으로 나가는 데 배삯만 6만원이 넘는다. 어휴....좋은 구경 하긴 했지만 등골이 휘는구만...

(녹동-거문간을 운항하는 가고오고호)

(녹동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녹동항에 내려 조금 떨어져 있는 녹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서울 센트럴시티로 바로 가는 버스는 17시가 막차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광주로 이동했다. 녹동에서 고흥,벌교,화순을 거쳐 광주터미널에 도착 / 다시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새벽 1시 20분.... 밤 열시경 집을 나선 후 27시간 동안 밖에서 보낸 것이다. 무척 피곤한걸...

그래도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거문도를 다녀와 굉장히 만족한다. 역시 명성대로 거문도의 풍경은 돈 그만큼 주어 가며 갔다올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었다. 또 오고 싶다.

이제 여행을 조금 자제해야지...등골이 너무 휜다. --;;;;